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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따라 흩어진 생각들

by 두둥실늘 2025. 7. 24.

가끔은 이유 없이 걷고 싶을 때가 있다.
해야 할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휴대폰을 가방 깊숙이 넣은 채로,
아무도 부르지 않는 길 위에 혼자 서 있으면 마음속 깊은 곳이 조금씩 풀린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머릿속이 뒤엉켜 있고, 마음이 무겁기만 해서
나는 집 밖으로 나왔다. 특별한 목적도, 특별한 장소도 없었다.
다만 걷다 보면 정리되지 않던 생각들이 조용히 모양을 찾아갈 것 같았다.
그래서 걸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 길 위에서 떠오른 생각들을, 이렇게 일기장 한 구석에 남겨둔다.

 

골목길의 햇살 속에서

오늘은 이유 없이 마음이 답답해서 집을 나섰다.
목적지도 없이, 단지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고 싶었다.
집 앞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니, 오후 햇살이 낮게 깔려 있었다.
벽돌담에 부딪힌 빛이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났고, 오래된 담벼락 사이로 조그만 들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걷다 보니 아주 사소한 것들이 마음을 건드렸다.
담장 위로 흘러넘친 담쟁이넝쿨, 바람에 달그락거리던 낡은 우체통, 그리고 담 모퉁이에 붙어 있던 오래된 포스터.
내 삶도 저 포스터처럼 조금은 낡고 빛이 바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듣지 않고 걷다가, 작은 슈퍼 앞에 멈춰 서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골목 끝 벤치에 앉아 있는 동안,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나는 그 그림자를 가만히 바라보며, 오래전 잊고 있던 꿈을 떠올렸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도심을 조금 벗어나 큰 길로 나섰다.
가로수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생각보다 선선했다.
나는 그 바람을 맞으며 한동안 눈을 감았다.
“나를 이렇게 움직이게 만드는 건 뭘까?”
문득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늘 어떤 이유를 찾아 움직인다.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누군가는 책임 때문에, 그리고 또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를 좇아 걷는다.
나는 지금, 이유를 찾지 않고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무의미한 걸음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마도 세상에 꼭 이유가 필요한 일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잠시 동안 잊었던 자유로움이 가슴 속에서 부풀어 올랐다.

길가의 작은 공원에 들렀다.
누군가 심어둔 코스모스가 한창이었다.
꽃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마치 그 순간의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 네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이렇게 피어날 수 있어.’
꽃들이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그 앞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녁빛이 스며드는 순간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 하늘이 천천히 붉어지고 있었다.
골목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 옆으로 늘어선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졌다.
그 불빛 아래를 걸으며 나는 하루를 곱씹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 같았지만, 내 마음에는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내가 걸었던 길, 바라본 꽃, 들이마신 바람, 그리고 흩어졌다가 모여든 생각들.
그 모든 것들이 한데 모여 조용한 노래처럼 울렸다.
사람들은 종종 “혼자 걷는 산책길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지만,
오늘 나는 알 것 같았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내 안의 소리를 들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희미하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희망까지.
모두가 바람을 타고 나를 스쳐 갔다.

집이 가까워지자 노을이 점점 옅어졌다.
나는 멈춰 서서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의 공기, 그 순간의 빛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의 이 길 위에서, 나는 조금 더 나다워졌다.”

바람 따라 흩어진 생각들
바람 따라 흩어진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