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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잊지 못하는 이유

by 두둥실늘 2025. 7. 23.

이상하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말이 있고, 평생 가슴에 남는 말이 있잖아. 나는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해.

 

그날은 별일 없던 오후였고, 햇살이 유난히 느리게 흘렀던 날이었거든.

늘 그렇듯 집 앞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글을 쓰려다 말고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었어.

사실 그때 난 꽤 지쳐 있었거든. 누구한테도 말은 안 했지만, 스스로가 별로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어.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쓴다고 할 수 없었고, 사람들과 연락도 뜸했고, 뭐 하나 똑바로 해내지 못하는 것 같았지.

그런 날이었는데, 우연히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를 만났어. 그냥 잠깐 차 한 잔 하자고 했는데, 그 만남이 이렇게 오래 남을 줄은 몰랐어.

 

지금도 그때 그 자리, 그 목소리, 그 말투가 머릿속에 선명해. “너는 그냥 그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야.” 이 한마디가, 내 마음속 어딘가를 콕 건드린 거야.

 

그냥 흘려들을 수도 있었던 말

그 말을 들었을 때 사실은 별 대단한 문장은 아니었잖아. 누가 들으면 그냥 흔한 위로처럼 느낄 수도 있어.

근데 왜일까,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가 내 안쪽까지 스며드는 느낌이었어.

내가 그때 얼마나 내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는지, 나만큼은 알고 있었거든. “너는 그냥 그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야.” 이 말이 내 속에 들어오자마자, 눈물이 핑 돌더라. 내가 나한테 한 번도 해주지 않았던 말이었거든. 나는 늘 “이건 해야지”, “이것도 못 해?” 하면서 스스로를 몰아붙이기 바빴어. 남이 봤을 땐 괜찮아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정작 나는 나 자신을 단 한 번도 가볍게 안아준 적이 없었지.

그래서 그 말이 그렇게 오래 남는 거야.

그날 이후로 나는 진짜 오래 고민했어. “왜 그 한마디에 이렇게 흔들렸을까?” “나는 그동안 얼마나 나를 괴롭혔던 걸까?” 정말 많은 생각이 떠오르더라.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던 순간

그 말을 듣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괜히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었어.

늘 듣던 노래였는데, 그날따라 가사가 다르게 들리더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가사가 갑자기 “아, 나부터 나를 사랑해줘야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어.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이 괜히 더 선명하고, 길가에 핀 작은 들꽃도 괜히 더 예뻐 보였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누군가의 한마디 때문에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그 기분… 너도 알 거 같지?

집에 도착해서 방에 누웠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 처음에는 왜 울고 있는지 나도 몰랐어. 그냥 감정이 주체가 안 되는 느낌? 근데 곰곰이 생각하니까, 그동안 너무 오래 나 자신을 괴롭히면서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어.

글을 못 쓰면 글을 못 쓰는 대로 괜찮은 건데, 나는 왜 그걸 못 견디고 스스로를 채근했을까.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늘 마음속에 상처가 하나씩 쌓이고 있었던 거야. 그 친구는 아마 별생각 없이 했을 거야.

그냥 내 표정이 힘들어 보이니까, 혹은 내가 무기력해 보이니까, 위로하려고 한 말이었겠지.

근데 그게 나한테는 구원처럼 느껴졌어. “그 자체로 괜찮다”는 말이 이렇게 큰 위로가 될 줄은 몰랐어. 나는 늘 뭔가를 이루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그날 이후로,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어. 나는 그날을 내 일기장에 아주 길게 적었어. 그날의 대화, 그 친구의 표정, 그리고 내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지까지.

글을 쓰면서 또 한 번 울었어. 근데 그건 이전처럼 괴로워서 우는 게 아니라, 뭔가가 풀려서 우는 눈물이었어. “아, 나도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는 기분이 처음으로 마음 깊이 들어왔거든.

그날 밤, 불을 끄고 잠들기 전까지도 계속 생각했어.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언젠가 누군가가 지쳐서 눈빛이 어두워졌을 때, 나도 그 사람한테 그런 한마디를 해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괜히 가슴이 따뜻해지더라.

어쩌면 그 말은 나한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필요했던 말일지도 몰라.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유

그 이후로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도 이상하게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어.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말을 듣잖아. 좋은 말도, 상처 주는 말도, 그냥 흘려보내는 말도. 근데 그 수많은 말 중에 오래 남는 말은 진짜 몇 안 되더라.

그날 그 한마디는 그냥 가슴속 깊은 곳에 박혀서, 내가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구절이 됐어. 솔직히 그 친구와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야.

가끔 안부 묻는 정도로만 이어가고 있어. 하지만 그 말만큼은 내 인생의 한 장면처럼 또렷하게 남아 있어. 글을 쓰다가 막힐 때,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겁이 날 때, 혹은 혼자 방구석에서 의미 없이 멍하니 있을 때… 그 한마디가 내 귀에 속삭이듯 들려. “너는 그냥 그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야.”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세상에 수많은 말 중에 왜 이런 말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어.

우린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은 쉽게 하면서, 정작 필요한 위로의 말은 왜 그렇게 아끼는 걸까. 나도 예전엔 그랬어.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어도 괜히 어색할까 봐, 괜히 부담 줄까 봐, 마음속으로만 삼키고 말았거든. 하지만 그 한마디를 들은 이후로는 달라졌어. 이젠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주저하지 않고 한마디 건네. “너는 너라서 좋은 거야.” “지금 모습도 충분히 괜찮아.” “괜찮아, 너는 잘하고 있어.” 이런 말을 해주면, 상대방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환해지는 걸 볼 수 있어. 그때마다 그날의 내가 떠오르고, 그 친구가 떠오르고, 그 말이 다시 떠올라.

그러면서 나는 또 한 번 따뜻해지고,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더 부드러워지는 것 같아.

 

다시 그날을 떠올리며 이렇게 길게 쓰다 보니까 다시 그날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

낡은 카페 의자, 유리창 너머로 스며들던 오후 햇살, 그리고 “너는 그냥 그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하던 그 순간.

그 말은 나를 구했고, 나를 바꿨고, 지금까지도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고 있어. 생각해보면, 삶이란 건 그런 작은 순간들로 이어지는 것 같아. 누군가의 한마디, 스쳐 지나간 어떤 눈빛, 잊히지 않는 어떤 장면들. 그게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 내가 흔들릴 때마다 손을 내밀어 주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글로 써 내려가면서,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날의 나처럼, 지금 이 글을 읽는 너도 누군가의 한마디 때문에 웃고, 울고, 살아가고 있겠지. 그렇다면 오늘 하루는 그 자체로 충분히 괜찮은 거야. …그리고, 언젠가 너도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해주게 되겠지.

 

“너는 그냥, 그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야.”

 

그날을 잊지 못하는 이유
그날을 잊지 못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