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난히 마음이 지쳐 있었다.
아침부터 휴대폰 속 알림이 쉼 없이 울렸고, 머릿속엔 해야 할 일들이 엉켜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해도 될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손끝이 근질거렸다.
이런 날엔 오븐을 켜는 게 가장 좋은 위로가 된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싱크대 한쪽에 늘 준비해 둔 밀가루와 버터, 차갑게 식혀 둔 우유를 꺼내놓았다.
가만히 재료를 바라보고 있자니, 별것 아닌 이 조합이 어떻게 나를 웃게 만들까 싶어 조용히 미소가 지어졌다.
버터와 밀가루가 만나던 순간
작은 그릇에 밀가루를 담고, 차가운 버터를 손끝으로 오물오물 부수듯 섞어 내렸다. 손가락 끝이 서늘해지면서도, 그 차가운 감각이 오히려 마음을 맑게 하는 듯했다.
버터가 밀가루 사이에서 작은 콩알처럼 흩어지기 시작하면, 마치 내가 하루의 조각난 마음을 하나씩 다듬는 것 같았다.
우유를 부어가며 조심스럽게 반죽을 모으는 동안, 부엌 창가로 오후의 햇살이 기울어 들어왔다. 반죽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하나로 뭉쳐갔다.
‘오늘도 이렇게 다시 모아지는구나.’ 그 순간, 오븐을 예열하는 작은 ‘삑’ 소리가 들렸다.
기계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 작은 날숨 같은 바람을 내뱉으며 준비를 마쳤다.
오븐 속으로 스며드는 기다림
반죽을 네모로 밀고, 동그스름하게 잘라낸 스콘들을 조심스레 팬 위에 올려놓았다.
문을 닫고 타이머를 맞춘 뒤 부엌의 스툴에 잠시 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기다림이 시작됐다.
오븐 속에서 벌써 무언가가 부풀어 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버터가 녹아내리며 퍼지는 고소한 향이 부엌을 채우기 시작했다. “오븐 문틈 사이로 퍼져나오는 스콘 냄새가 오늘 하루의 무거움을 녹여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갑자기 가슴속 깊은 곳이 따뜻해지고, 마음 한켠이 말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 조각의 위로를 굽다
딩— 타이머가 울리자마자 나는 조심스럽게 오븐 문을 열었다.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스쳤고, 그 속에서 노릇하게 부풀어 오른 스콘들이 나를 반겼다.
작은 빵칼로 하나를 들어 올려 식힘망 위에 놓았다. 그 위로 여전히 부드러운 증기가 피어올랐다. 스콘 하나를 조심스레 쪼개니, 결마다 작게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속에서 버터의 향이 한 번 더 퍼져 나왔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그대로 베어 물었을 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이 입안에 가득 번졌다.
순간, 오늘 하루 나를 짓눌렀던 고민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스콘을 굽는다는 건, 단지 밀가루와 버터를 굽는 일이 아니다. 삶에 작은 여유를 구워내는 일이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반죽과, 오븐에서 퍼지는 따스한 향기, 그리고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버터 맛이 나를 다시 살게 한다.
오늘 일기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어두어야겠다.
“스콘을 굽던 오후, 나는 다시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