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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당직제도, 왜 이제야 바뀌는 걸까?

by 경제도토리 2025. 9. 17.

지난 9월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는 조금 특별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인사혁신처와 공무원 노동조합 3개 단체(국가공무원노조, 전국공무원노조, 공무원노동조합연맹)가 모여 공무원 당직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한 것이죠. 단순히 한 기관의 근무방식 개선이 아니라, 전국 공무원 57만 명 이상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제도 개편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당직’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익숙합니다. 학교, 회사, 병원, 공공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밤새거나 휴일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돼 왔습니다. 하지만 공무원 사회에서 당직은 단순한 숙직 개념을 넘어, 국가 긴급 상황에 즉각 대응하기 위한 필수 제도로 자리 잡아왔습니다. 문제는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죠. 이번 논의는 바로 이런 불합리함을 손보려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당직제도,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1,171개 기관에서 약 57만 명의 공무원들이 당직 근무를 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긴급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한 대기성 근무로 채워지고 있죠.

이런 구조는 공무원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낮 동안 정상 근무를 하고도 밤이나 휴일에 기관에 남아 대기해야 하고, 실제로는 특별한 업무가 없더라도 근무 시간으로 인정되니 피로감은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 공무원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데, 당직 근무는 이런 가치와 크게 어긋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국가 기관은 돌발적인 재난, 민원, 보안 상황 등에 대응해야 하니까요. 따라서 관건은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인가’**입니다.

정부와 노조가 제시한 개선 방향

이번 간담회에서는 다양한 개선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1. 인공지능(AI) 활용
    최근 기술의 발전을 행정 영역에도 적용해 보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황실 모니터링, CCTV 분석, 긴급 상황 알림 등은 AI가 충분히 맡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밤새 지켜보지 않아도 이상 징후를 탐지하면 자동으로 알려주고, 필요할 경우 담당자에게 긴급 호출을 하는 방식입니다.
  2. 당직실·상황실 통합 운영
    현재는 중복된 기능이 많습니다. 당직실과 상황실을 분리 운영하다 보니 비효율이 발생하는데, 이를 통합해 관리 체계를 단순화하면 인력과 비용을 동시에 절감할 수 있습니다.
  3. 민간 경비업체 활용
    건물 출입 통제, 기본적인 안전 관리 등은 민간 경비 업체가 맡아도 충분하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공무원은 긴급 대응과 행정적 판단에 집중하고, 단순 보안 업무는 외주를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4. 대기성 당직 최소화
    가장 큰 목표는 불필요한 대기 시간을 줄이는 것입니다. 실제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만 인력이 배치되도록 제도를 개편하고, 단순히 앉아서 ‘대기만 하는 당직’은 점차 축소한다는 계획입니다.

기대되는 효과

이런 변화가 현실화된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 공무원의 삶의 질 향상
    대기성 근무가 줄어들면 불필요한 피로감이 크게 줄어듭니다. 이는 곧 업무 효율성, 직무 만족도, 나아가 공무원 조직의 사기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 행정 효율성 강화
    중복된 당직 체계가 정리되고 AI가 보조 역할을 한다면, 인력과 자원을 더 중요한 곳에 배치할 수 있습니다.
  • 긴급 대응력 유지
    중요한 것은 ‘안전망’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 개선안은 긴급 상황 대응은 유지하되, 필요 없는 낭비를 줄이는 방향이기 때문에 균형 있는 효과가 기대됩니다.
  • 디지털 전환 촉진
    공공 부문에서 AI와 자동화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행정 혁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장밋빛일 수는 없습니다. 몇 가지 우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1. 긴급 상황 대응 공백
    만약 인력 축소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위기가 발생한다면 대응이 늦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했어도 최종 판단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 초기 비용 부담
    AI 시스템 구축, 보안 장비 업그레이드, 운영 교육 등은 적지 않은 예산이 듭니다. 특히 소규모 기관은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책임소재 불분명
    AI가 경보를 놓쳤을 때, 혹은 민간 경비원이 제 역할을 못했을 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제도적으로 명확히 해야 합니다.
  4. 노조와의 갈등 가능성
    근무 방식이 바뀌면 보상 체계나 근무 조건도 함께 손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노조 간의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해외와 민간의 사례는?

사실 이런 시도는 해외나 민간에서도 이미 일부 진행되고 있습니다.

  • 해외 공공기관은 재난 감지 센서, 자동 보고 시스템 등을 활용해 24시간 대기 인력을 줄여왔습니다.
  • 민간 기업에서는 콜센터나 고객센터 업무 일부를 자동화하거나 외주로 돌려 핵심 인력은 본업에 집중하도록 운영합니다.
  • 의료·소방 분야에서는 ‘온콜(On-call)’ 근무 방식을 개선해 대기 시간을 줄이고, 수당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례들은 한국 공공 부문에도 시사점을 줍니다.

앞으로의 방향

당직제도 개편은 단순히 근무 시간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공공 행정 전반의 혁신과 연결됩니다. AI 도입, 제도 정비, 민간 협력 등은 모두 디지털 전환과 행정 현대화의 큰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변화에는 리스크가 따릅니다. 그러나 기존처럼 비효율적인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더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효율성을 추구하되 긴급 대응 능력은 반드시 보장해야 하고, 노조와 정부 간의 충분한 대화와 합의가 필요합니다.

 

이번 인사혁신처와 노조의 만남은 단순히 한 제도의 개선 논의가 아니라, 공공 행정의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탄입니다. AI 활용, 당직 통합, 민간 협력, 대기성 근무 축소라는 키워드는 앞으로 다른 행정 영역에도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현장의 공무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느냐입니다. 제도는 결국 사람이 운영합니다. 공무원의 삶의 질이 높아져야 시민에게 돌아가는 서비스의 질도 높아집니다. 이번 논의가 말뿐인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봅니다.

 

공무원 당직제도, 왜 이제야 바뀌는 걸까?
공무원 당직제도, 왜 이제야 바뀌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