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어.
별일 없었는데도 가끔 그런 날 있잖아.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이불 속에서 숨고만 싶은 기분.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보는데, 빛이 조금 다르더라.
어제는 흐리고 비가 쏟아졌는데, 어제 아침은 햇살이 묘하게 따뜻해 보였어.
그때만 해도 ‘날씨 좋네’ 하고 끝낼 줄 알았거든.
그래도 뭔가 답답한 마음이 풀리진 않아서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이러다 하루 다 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커피를 한 잔 마시려고 부엌으로 갔다.
커피포트가 끓는 동안 창문을 활짝 열었는데, 와… 공기가 생각보다 상쾌한 거야.
서늘한 바람이 얼굴에 스쳤는데, 그 순간 약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지만, 괜히 밖에 나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
커피를 보온컵에 담고 운동화를 꺼내 신었어. 슬리퍼로 대충 나가려다 뭔가 제대로 걸어보고 싶어서 운동화를 골랐지.
골목길로 나갔는데, 와… 정말 생각보다 좋았어.
햇살이 쨍쨍한데 뜨겁지 않고, 공기는 차갑지 않게 시원하고. 며칠 전까지 비에 젖어 축 늘어져 있던 작은 꽃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어. 노란 꽃이랑 보라색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니까 괜히 나도 고개를 까딱까딱하게 되더라.
그때부터인가 마음속에 묵직했던 게 아주 살짝 가벼워지기 시작했어.
똑같이 걸어가는 건데, 발걸음이 조금씩 가벼워지더라.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그 기분이 이어져서, 일하려고 책상에 앉았다가 결국 잠깐 쉬기로 하고 카페에 나갔어.
집에서 계속 있으니까 괜히 머리가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거든.
동네 카페에 갔는데, 딱 창가 자리가 비어 있었어.
햇살이 딱 그 자리로만 쏟아지는 느낌이었는데, 그 빛이 이상하게 포근하더라. 아이스라떼를 시켜놓고 노트북을 펼쳤는데, 사실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걷고,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고 있는데, 그 모습이 그냥 좋았어.
그때부터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나를 누가 살짝 일으켜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얼음이 살살 녹으면서 딸각딸각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괜히 기분 좋게 들리고, 카페 안에서 흐르는 음악도 그때는 유난히 좋게 들렸어.
햇살, 음악, 커피, 그리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느슨한 순간. 갑자기 “아, 괜찮네… 오늘”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왔어.
그 전까지는 왜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 왜 이렇게 나만 제자리 같지 하면서 괴로웠는데, 그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어.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고, 잠시 숨만 쉬어도 괜찮다는 기분.
시간이 흘러서 저녁 무렵 마트를 다녀오는데, 봉지 두 개를 들고 천천히 걸어오다가 문득 골목 끝을 봤어.
해가 지고 있었는데, 세상에… 그 노을빛이 온 골목을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있더라.
내가 평소 지나치던 그 길이 갑자기 다른 세상처럼 보였어. 그 자리에서 잠깐 멈췄다가 집 앞 벤치에 앉았어.
두부랑 우유 든 봉지를 옆에 내려놓고 그냥 노을을 보고 있었지. 지나가던 꼬마가 킥보드를 타고 가면서 “엄마, 해가 진다!”라고 외쳤는데, 그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와서 마음을 울리더라. 괜히 뭉클하고, 괜히 행복했어.
아침에는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하루 끝에 이렇게 앉아서 노을을 보고 있으니까, 세상에… 아무렇지도 않게 “아, 오늘 하루 좋았네”라는 생각이 들더라.
날씨가 이렇게 사람 마음을 바꿀 수 있는지 몰랐어.
어제는 그냥 그런 하루였다. 우울하게 시작했지만, 하루가 지나면서 점점 마음이 가벼워지고, 결국엔 노을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웃을 수 있었던 날.
그런 하루가 또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