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 벽 앞에서 다시 만난 우리의 시간

by 두둥실늘 2025. 7. 26.

오랜만에 일기를 쓰려 책상 앞에 앉자, 오늘 하루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침까지만 해도 오늘이 이렇게 특별해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친구와 약속한 클라이밍 체험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을 뿐, 평범한 하루가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낯선 클라이밍장 한구석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세상은 잠시 멈춰 서는 듯했다.
오늘은 손끝에 남은 초크 가루와, 오래된 대화가 마음 한구석에 남겨 놓은 잔잔한 감정을 기록해 두고 싶다.

 

높은 벽 앞에서 마주한 낯익은 얼굴

클라이밍장에 들어서자 천장을 향해 높이 뻗은 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형형색색의 홀드들이 마치 미완성의 그림처럼 붙어 있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천천히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낯선 공간과 긴장된 마음 때문에 잠시 주춤거리고 있었는데, 그때 내 시야 한쪽으로 익숙한 모습이 스쳤다.
“…지연이?”
내가 조심스레 부르자, 그 사람이 놀란 듯 고개를 돌렸다. 맞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내 오래된 친구 지연이었다.
“세상에, 너 여기서 뭐해?”
우리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그 자리에서 웃음이 터졌다. 서로의 안부를 빠르게 묻고, 왜 여기에 왔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연도 요즘 운동 삼아 클라이밍을 시작했다고 했다. 몇 년 동안 연락도 없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같은 공간에서 다시 마주한다니. 그 순간, 오래전 교실 창가에서 함께 수다 떨던 장면이 생생히 떠올랐다.
낯선 벽 앞에서 느꼈던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속에는 따뜻한 설렘이 번졌다.

손끝에 힘을 주며, 오래된 대화를 이어가다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초크를 묻히면서도 우리는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예전에도 이렇게 뭔가 도전적인 거 좋아했나?”
“아니, 나 완전 집순이였잖아. 근데 요즘 뭔가 새로 하고 싶어서.”
짧은 대화가 오가는 동안, 우리는 차례로 벽 앞에 섰다. 처음 홀드를 잡을 때 손끝으로 전해지는 거친 감촉이 낯설었지만, 친구의 응원이 묘한 힘이 되어 주었다.
“한 칸만 더 올라가 봐! 너 할 수 있어.”
지연의 목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다. 그 순간 발끝에 힘이 더 실리고, 팔이 떨리는 와중에도 한 칸 더 위로 손을 뻗었다.
위로 오를수록 벽이 내 마음속 벽처럼 느껴졌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미안함, 바쁘다는 이유로 멀어진 관계들, 그리고 나 스스로를 가두었던 조심스러움까지. 하지만 한 칸, 또 한 칸 올라가면서, 그 벽을 조금씩 허무는 기분이 들었다.
내려왔을 때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지연도 땀을 닦으며 말했다.
“너 진짜 잘한다. 오늘 같이 하길 잘했네.”
우리는 그렇게, 오랜만의 재회와 새로운 도전을 나란히 즐기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린 듯한 저녁, 그리고 마음에 남은 빛

클라이밍을 마치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작은 창문으로 부드러운 저녁 햇살이 스며들고, 따뜻한 차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서로의 앞에 놓인 머그잔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동안, 우리는 지난 몇 년간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지연은 대학을 졸업한 뒤 새로운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며 힘든 시간을 견뎌왔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내 일상에 갇혀 소소한 것들만 붙잡고 살았던 이야기를 했다. 서로의 이야기가 교차할수록,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것처럼 마음속이 따뜻해졌다.
“그동안 연락 못해서 미안했어.”
“아니야, 이렇게라도 다시 만났잖아.”
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 순간, 클라이밍장에서 벽을 오르던 내 모습과 지연의 웃음이 함께 떠올랐다.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한 자리에 겹쳐 보였다.
밖으로 나오니 해가 지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 지하철 창밖으로 스치는 밤 풍경이 평소보다 더 부드럽게 느껴졌다. 손끝에는 여전히 초크 가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마음에는 지연과 나눈 대화가 잔잔한 온기로 남아 있었다.

 

 

오늘 우연히 만난 오래된 친구와의 대화는 내 마음속 오래된 문을 열어 주었다.
높은 벽을 오르던 순간과, 그 위에서 느낀 떨림, 그리고 내려와 마주한 따뜻한 대화가 오늘을 특별하게 빛나게 했다.

“세월이 흘러도, 마음을 이어주는 순간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

🌿 벽 앞에서 다시 만난 우리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