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를 떠올리면, 손끝에 남은 거친 감촉과 함께 그윽한 차 향이 먼저 떠오른다.
아침에는 그저 평범한 하루처럼 시작됐다. 커튼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내 방을 부드럽게 감싸고, 창밖에는 가벼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내게 낯선 계획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실내 클라이밍장을 방문하기로 한 것. 손에 초크 가루를 묻히며 높은 벽을 오르는 일이 나를 얼마나 두근거리게 할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마신 따뜻한 차 한 잔. 그 순간 문득 떠오르는 감정들—벽을 오르던 떨림, 그때의 숨결, 그리고 지금의 고요함. 오늘의 나는 그 모든 것을 이 글로 남긴다.
처음 손을 댄 차가운 벽, 낯선 도전 앞에서
클라이밍장에 들어섰을 때, 천장을 향해 뻗은 거대한 벽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색색의 홀드들이 벽 위를 수놓은 듯 박혀 있었고,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찾아가듯 천천히 위로 오르고 있었다. 그 광경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내가 저걸 할 수 있을까?’
트레이너가 내 손에 초크를 묻히며 안전벨트를 착용시켜 주었다. 그 순간 손바닥이 서서히 거칠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마음도 동시에 긴장으로 굳어갔다. 첫 번째 홀드를 잡자마자 차가운 벽의 촉감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마치 나를 시험하는 듯한 차가움이었다.
발을 디디고 팔에 힘을 주어 몸을 들어 올리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시작되었다.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여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위를 올려다보면 막막할 만큼 높았지만, 눈앞의 한 걸음에만 집중하며 조금씩 올라갔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응원 소리가 묘한 힘을 주었다.
몇 번이나 미끄러지고 다시 시도했다. 그때마다 내 손등에는 하얀 초크 가루가 더 짙게 묻어나왔다. 벽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뜨거워졌다.
내려와 마주한 한 잔의 차, 그리고 밀려드는 감정
몇 차례의 도전 끝에, 나는 벽의 중간을 넘어섰고, 잠시 손에 힘이 풀려 아래로 내려오게 되었다.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마음만큼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숨을 고르며 의자에 앉았을 때, 친구가 작은 보온병을 내밀었다.
“따뜻한 차 좀 마실래?”
보온병의 뚜껑을 열자 은은한 캐모마일 향이 퍼졌다. 손에 쥐었을 때 전해지는 온기가 막 벽에서 내려온 손끝을 천천히 데워주었다. 뜨겁지 않을 정도의 포근한 온도가 손바닥에서 심장으로, 그리고 마음 한가운데로 흘러들었다.
한 모금 마셨을 때, 입안에 은은한 꽃향기와 약간의 단맛이 감돌았다. 순간 오늘의 모든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높은 벽을 오를 때의 떨림, 떨어질까 두려워 발끝을 움켜쥐던 순간, 그리고 손끝에 묻어있던 하얀 가루.
차 한 잔이 이렇게 많은 감정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따뜻함 속에 숨겨진 건, 오늘 나 자신이 한계를 넘어섰다는 작은 자부심과 누군가와 그 순간을 나누고 있다는 소중한 감각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밤, 손끝과 마음에 남은 온기
클라이밍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저녁 공기는 서늘했지만 마음만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은 땀에 살짝 젖어 있었고, 눈가에는 작은 미소가 남아 있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책상 앞에 앉아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거칠어진 피부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초크 자국. 그 위에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한 차의 온기.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이 천천히 내 안을 채웠다.
처음으로 높은 벽을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지만, 그 순간의 감정을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마치 그 차가 오늘 하루의 모든 긴장을 부드럽게 녹여준 것 같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그 향이 코끝에 맴도는 것 같다. 오늘의 클라이밍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나에게 새로운 용기를 심어준 특별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품은 채 마신 차 한 잔은, 앞으로의 날들 속에서도 문득 떠올릴 수 있는 위안이 되어 줄 것 같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일기를 쓰고 나니, 다시 한 번 그 따뜻함이 마음속에서 번져나간다.
내일도, 모레도, 혹은 언젠가 또 다른 도전을 앞두었을 때도, 나는 오늘의 이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손끝에 남은 거친 감촉, 그 위로 스며들던 한 잔의 차의 온기, 그리고 마음 한가득 번지던 감정까지.
“오늘, 나는 한 잔의 차를 통해 나를 위로했고, 새로운 나를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