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무리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의 점심이 자꾸 떠오른다.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던 한 끼가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하게 채워준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아침에는 여느 날처럼 바빴고, 지하철 속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사이에서 나도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날의 일정에는 조금은 특별한 목적지가 있었다. 오랜만에 가는 친구의 결혼식. 평소처럼 흘러가던 일상에 작은 설렘이 더해졌고, 그 설렘은 결국 오늘의 한 끼를 잊지 못할 기억으로 만들어주었다.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던 그날, 나는 사랑이 가득한 예식장에서 가장 맛있는 점심을 맛보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맛과 그 순간의 기분을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결혼식 날, 햇살 속으로 걸어가다
오늘은 오랜만에 결혼식에 다녀왔다. 아침부터 이상할 만큼 설레서, 옷을 고르는데 괜히 시간을 오래 썼다. 새하얀 블라우스를 꺼내 입고, 평소보다 조금 더 꼼꼼히 화장을 했다. 거울을 보며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 될 거야” 하고 혼잣말을 했던 순간이 아직도 떠오른다.
택시를 타고 예식장으로 가는 길, 창밖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유난히 부드럽게 느껴졌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사이의 바람이 살짝 불어와, 창문을 반쯤 열고 그 바람을 느끼며 한동안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다.
예식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하얀 꽃장식과 은은한 음악이 나를 반겼다. 문을 열자마자 웨딩홀 안쪽에서 피아노 연주 소리가 흐르고, 하객들의 조용한 웅성거림이 함께 섞였다. 그 순간 마음 한편이 묘하게 찡해졌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길을 걷기 시작하는 날, 그 현장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기분이었다.
뷔페에서 만난 다채로운 맛의 향연
결혼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한 줄로 뷔페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줄을 따라 걸었다. 뷔페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풍겨오는 음식 냄새가 마치 손짓하는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투명한 유리판 위에 가지런히 놓인 연어 사시미였다. 주황빛 살결이 은은하게 빛나고, 얇게 썬 레몬이 그 위에 얹혀 있었다.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자, 신선한 바다의 향과 부드러운 식감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 옆에는 작은 접시에 담긴 스시가 종류별로 나열되어 있었다. 참치, 새우, 그리고 살짝 구운 장어까지. 장어 스시를 입에 넣었을 때 달콤 짭조름한 소스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친구가 “로스트비프 꼭 먹어봐!”라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구석 코너에 있던 로스트비프 코너는 마치 공연을 보는 듯했다. 요리사가 그 자리에서 고기를 얇게 썰어주는데, 그 소리와 향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릇 위에 얹힌 고기에 갈색 소스를 살짝 부어 한입 먹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씹히며 풍부한 육즙이 흘러나오는 그 순간,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환하게 켜지는 기분이었다.
식사의 마지막은 디저트였다. 작은 타르트와 마카롱, 그리고 작은 잔에 담긴 티라미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딸기 타르트를 하나 집어 테이블로 돌아왔다. 포크를 살짝 넣어 한입 떠먹자 상큼한 딸기와 부드러운 크림이 혀끝을 스쳤다. 달콤함이 입안을 채우는 동안, 창밖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눈부시게 빛났다.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사랑이 남긴 잔잔한 여운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배는 든든히 차 있었지만 마음은 더 가득 차 있었다. 문득 친구가 신부로서 서 있던 순간이 떠올랐다. 하얀 드레스 자락이 조명 아래에서 빛나고, 그 옆에서 신랑이 손을 꼭 잡아주던 장면. 그 두 사람의 표정에서 묘한 평온함과 행복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눈가가 시큰했다.
결혼식이라는 자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자리다. 하지만 오늘은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음식의 맛도, 사람들의 웃음도, 그리고 그날의 햇살도 모두 한데 모여 내 마음속에 잔잔한 호수를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창가에 앉아 그날을 곱씹었다. 연어 사시미의 신선함, 로스트비프의 풍부한 맛, 그리고 달콤했던 딸기 타르트. 그 모든 맛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그날의 감정과 기억을 담은 작은 조각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내 마음 한켠에서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늘의 일기를 쓰며 다시금 느낀다.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과 사람들과의 시간을 함께 담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오늘 맛있게 먹었던 점심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서 특별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사랑과 맛으로 채운 하루, 고마워.” 🌸💛